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몸 살펴보기
아버지의 등을 밀며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 택 수
1.
중학교 시절,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자 한동안 엄마가 생계를 책임졌다. 엄마는 참기름을 짜기 위해 부산 영도 끝자락에서 사상터미널까지 근 2시간을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시외버스를 갈아 타고 시골로 가셨다. 시골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짜 큼직한 말통에 담아 들고, 다시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신 뒤, 깨끗하게 씻어 말린 빈 소주병에 참기름을 옮겨 담았다. (커다란 말통에서 기름이 쏟아져 소주병으로 들어가는데, 어쩜 한방울도 흘리지 않는지...) 어머니는 그렇게 담아낸 참기름 몇 병 챙겨, 팔러 나가시면 밤이 깜깜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가게도 없이 어디서 어떻게 팔고 다니셨는지…)
그 무렵 내게는 엄마의 발이 무척 신기했다. 종종 굳은 살이 잔뜩 박인 엄마의 발가락과 발바닥을 만지작거리며 “와~ 진짜 딱딱해”하며 보들보들한 내 발바닥과 비교하곤 했다. 해맑게, 마냥 해맑게.
2.
둘째 아이를 낳고 몇 달 지나서였다. 풋잠에서 깨니 아내가 곁에 없었다. 아이는 잠들어 있고 아내는 집에 없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아내가 깜깜한 아파트 계단에 아무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차가운 계단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아내의 등은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한번 잠들면 거의 깨지 않는 사람이었고, 아내는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장모님은 12명 대식구의 맏며느리로 밥이며, 손빨래며, 온갖 농사일까지 도맡아 하셨다.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묵묵히 살아오셨다. 아내는 그런 장모님을 닮은 사람이었다. 나는 늘 집바깥으로 시선이 향해 있는 사람이었고.
그날 내가 아내의 등을 향해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컨데 “여기서 뭐해?” 정도가 아니였을까? 마냥 해맑게 혹은 마냥 무심하게.
3.
요즘.
저녁 산책길에서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는 아내의 등이 경쾌하다.
앞치마를 하고 식사 준비를 하는 아내의 등은 분주하고,
통장을 보고 한숨 짓는 아내의 등은 묵직하고,
피아노 치는 아내의 등은 부드럽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던가?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것,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앞만 보지 말고,
가끔은 마주보고
가끔은 살펴보면 어떨까?
지금, 나의 가족(친구)의 몸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