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유역의 시골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넋두리
곡석(곡식) 기르는 것과 자석(자식) 기르는 것이 매한가지여.
오리 새끼 기르는 것과 도야지 새끼 기르는 것도 다 한가지여.
내 속이 폭폭 썩지 않으면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법이여.
내 자석들을 키울 때는 애를 나무 그늘에 재워 놓고 논일을 했었는디,
애가 깨서 울길래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애를 때려 주고 나도 울었어.
그놈들이 자라서 시방 도회지에 나가서 일 다니는데 명절 때는 돌아와.
내가 논에서 일할 때
퍼런 곡석들 틈으로 멀리서 논두렁길을 걸어오는 내 자석들의 모습이 보이면
눈물이 쏟아져서 치맛자락에 코를 팽팽 풀었지.
어느 할머니
- 《문학기행》 2권 〈김용택─섬진강〉편에 나오는 한 귀절 (김훈·박래부 기자)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시, '풀꽃'을 보고
친구A가 말했다.
"우리네 삶은 자세히 볼 시간을 내기 어렵네..."
친구B는 이렇게 말한다.
"대충 그냥 봐도 다 이쁘다."
내 눈길이 깊이 가 닿은 것들은
그냥 봐도, 대충 봐도 다 이쁘다.
내 마음이 간절히 닿기를 바라는 것들은
그냥 봐도, 대충 봐도 다 이쁘다.
멀리서, 그것도 퍼런 곡석들 틈으로 보이는 자석들의 실루엣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그리움이 깊어, 간절함이 깊어, 쌓인 정이 깊어
'그냥 봐도, 잠깐 봐도 이쁜 것들이 뭐가 있을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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